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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읍

고한읍

고한읍은 조선 시대에 동상면에 속했던 고토일, 물한리로, 광무10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시 동상면, 동중면이 통합되어 동면이 되는 동시에 고토일, 물한리로 합쳐 고한리가 되었다. 자연부락으로는 고토일, 물한리, 갈래, 대두문동, 만항, 박심리로 구분되며 20년 전에는 780호 정도가 살고 있던 한적한 산촌이었는데 무진장으로 매장된 석탄개발이 활발해 지면서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현재 지방 행정리 25개 지역 주민 4천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읍 소재지이다.

  • 고한1리
    (1) 함백산(咸白山)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해발 1,573미터의 산이다. 오대산(五臺山:1,563m), 설악산(雪嶽山:1,708m), 태백산(太白山:1,567m) 등과 함께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가운데 하나다.

    (2) 만항
    함백산 서남쪽의 산등으로 사람들이 넘나든다하여 동네 말로 늦은목이(晩項)라 불리는 곳이다. 만항재는 포장도로(1,330m)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1,341m)이다.

    (3) 만항재
    만항 마을 위쪽에 있는 고개로 태백, 영월의 의 경계에 있다. 해발 1,341m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를 잇는 414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4) 제당골
    만항 마을 위쪽에 있는 골짜기다.

    (5) 평화촌
    고한읍사무소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에서 사원교육 목적으로 연수원을 건립했다가 노후 되어 현재는 광원사택을 지었기 때문에 연수원사택마을이라고 한다.

    (6) 뾰족산
    만항 동쪽에 있는 산이다.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생겨난 이름으로, 전설에는 자장율사가 공부를 하던 바위가 있다고 한다.

    (7) 강동재
    만항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이 골짜기를 넘어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강동마을로 넘어 다녔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8) 능목재
    예전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바로 위에 있던 고개다. 능목재를 올라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만항재에 오르고 곧바로 가면 태백시 혈리의 살래골과 월정골로 이어진다.

    (9) 가리막골
    제당골 위에 있는 골짜기다. 삼탄목장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골짜기로, 이 고개를 오르면 능목재에 이르게 된다.

    (10) 삼탄목장
    만항마을에 있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농장이 있던 곳이다. 예전에 이 농장에서 젖소를 길러서 짠 우유를 광업소 종업원들에게 공급했다.

    (11) 산막골
    만항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골짜기 안쪽에 움막을 치고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해서 생겨난 지명이다.

    (12) 쥐정골
    산막골을 넘어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강동으로 넘어가는 아랫 골짜기다. 자장법사가 이 고개를 넘어갔다는 기록을 찾을 수는 없으나, 영월 상동읍 구래리(九來里)도 ‘태백산 갈반지(葛蟠地)’를 찾으려고 자장법시가 아홉 번이나 다녀갔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13) 숨골
    평화촌과 만항마을 사이 뾰족산 너머에 난 골짜기다.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으나, 옛날 이 곳 사람들은 “숨골가서 숨 쉬고 적낭골 가서 대변 본다”고 했다.

    (14) 적낭골
    숨골과 적조암 사이에 있는 골짜기다. 적낭골을 넘어가면 적조암에 이르게 된다.
  • 고한2리
    (1) 두문동(上杜門洞)
    소두문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2) 두문동재
    태백시 화전동과 고한읍을 연결하는 해발 1,268미터의 고개다.

    (3) 두문동재터널
    두문동재 아래 해발 1,050미터에 관통하는 터널이다.

    (4) 금대봉(金臺峯)
    두문동 동쪽으로 태백시 창주공과 화전동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해발 1,418미터의 산이다.

    (5) 천의봉(天倚峯)
    금태봉 남쪽에 있는 해발 1,442.3미터의 봉우리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는 이 봉우리가 마치 팔뚝을 내밀고 손바닥을 위로 펼친 듯하고 기세가 정암사 수마노탑에 닿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고한3리
    (1) 소두문동(小杜門洞)
    두문동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작은 마을이 형성, 이곳을 대두문동에서 파생한 지역으로 소두문동으로 불리었다.

    (2) 자레바우
    소두문동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자라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생긴 지명으로, 지금은 마을에 5가구가 살고 있다.

    (3) 소두
    자레바위 위 안쪽에 있는 마을로 소두문동의 본마을이라고 해서 ‘소두’라는 지명이 생겼다.

    (4) 교틀재
    소두 서쪽에 있는 고개다. 예전에는 소금을 사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 동면 백전을 넘어 삼척 하장으로 다녔다고 한다.

    (5) 마당목
    소두 북쪽으로 난 고개다. 고개에 이르는 골짜기가 넓어 생긴 이름으로 큰골을 거쳐 금대봉 아래로 난 고개를 넘어 동면 백전리와 삼척 하장면과 창죽으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6) 큰골
    소두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골짜기가 넓고 커서 생긴 이름으로 너실목과 마당목으로 이어지는 입구이기도 하다.

    (7) 너실목
    소두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소두문동 사람들이 큰골과 너실목을 거쳐 삼척 창죽으로 다녔다.
  • 고한4리
    (1) 박심마을
    고한읍사무소 남쪽 백운산 자락 아래에 있던 산중 마을이다.

    (2) 십일구(十一區) 마을
    지금은 사라진 백운산 아래 박심 마을의 구역 이름으로 동원탄좌 11번째 갱구(坑口)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3) 십이구마을
    지금은 사라진 백운산 아래 박심 마을의 구역 이름으로 동원탄좌 12번째 갱구(坑口)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4) 섬거리
    십일구 마을 위에 있던 지명이다.

    (5) 팍심이재
    고한읍 사무소 남쪽 백운산에 있는 ‘박심재’의 사투리식 이름이다. 백운산 준령에 있으므로 ‘박심재’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팍심재, 또는 ’팍시미재‘등으로 불렀다.

    (6)박심고개
    백운산에서 함백산으로 이어진 박심고개 위로 난 길이다. 소잔등 같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난 고갯길로 최근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한다.

    (7) 삼봉(三俸)
    마을 앞으로 산봉우리 세 개가 솟아 있다고 해서 생긴 지명으로 부금소 서쪽에 있다. 이 가운데 작은 봉오리는 1972년 삼척탄좌 광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없어졌다.

    (8) 백련암
    삼봉아파트 남쪽 산에 있는 암자다. 옛날 이곳에서 처음 머문 스님이 기도를 할 때 하얀 연꽃을 보았다고 해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한다.
  • 고한5리
    (1) 상갈래
    정암사 입구 삼거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를 말한다.

    (2) 싸리덕
    일설에는 옛날부터 이곳에 싸리나무가 많은 언덕으로 싸리나무를 이용 수공예품이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싸리덕’의 ‘싸리’는 ‘사이’를 뜻하는 ‘삳(삿)’이 ‘살’로 개음절화한 말이다. ‘삳덕’이 ‘사디덕’이 되고, 이 말이 다시 ‘사리덕’, ‘싸리덕’으로 변했다. ‘싸리덕’은 ‘사이의 지형’이라는 뜻이다.

    (3) 절골
    골짜기에 태백산 갈반지(太白山 葛盤地)로 불리는 정암사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 고한6리
    (1) 새마을
    골프텔로 올라가는 굴다리 위에 있던 마을이다. 1967년 마을이 형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새마을’이라고 한다.
  • 고한7리
    (1) 중갈래
    중갈래는 지금의 갈래초등학교 아래쪽에서 고한초등학교 위쪽 일대를 말한다. 중갈래는 1970년대 석탄산업의 발달로 지장천을 중심으로 고한읍의 상권 중심지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2) 진골
    옛날 한일병원 뒤 남쪽 골짜기로 난 마을이다.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골짜기 안으로 30~40호가 빼곡히 몰려 사는 곳으로, 골짜기가 길어서 진골이라고 한다.
  • 고한8리
    (1) 구사택
    고한 중고등학교 위에 있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광부사택이다. 예전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사택이 있던 마을로 사택이 위쪽에 있어 상구사택이라고 한다. 하구사택은 고한초등학교 하천 건너에 있었다.
  • 고한9리
    (1) 당목
    고한읍사무소 대덕산 동쪽 산자락에 있던 마을이다. 일설에는 사람 죽으면 당목에서 항상 하관을 하며 울었다하여 생긴 지명이라고 하나 옛날부터 마을의 커다란 나무를 가리켜 ‘서낭목’, ‘당목’, ‘신목(神木)’이라고 해 나무를 신성시(神聖視)해 그 곳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곤 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2) 상당목
    고한여자고등학교 위 당목 위쪽 마을을 상당목이라고 한다. 상당목을 넘어가면 고토일에 이른다.

    (3) 양지뼝달
    고한여자고등학교 아래쪽에 있는 양지바른 마을이다. 해가 잘드는 언덕배기 마을이라고 해서 ‘양지뼝달’이라고 한다.

    (4) 중당목
    상당목 아래에 있던 마을이다.

    (5) 구항
    상당목에 있던 동원탄좌 하청 갱구다. 옛날 탄광업자인 신경록씨가 갱구를 개발해 당목광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 고한10리
    (1) 역전
    고한역 앞 일대를 말한다. 1965년 예미역에서 고한까지 철도가 건설되면서 역 앞 일대를 지칭하는 마을로 과거에는 석탄산업으로 크게 번성했던 마을이다.

    (2) 시장
    현재 시장주변 시장을 말한다. 본래 고한시장은 상갈래에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인해 떠내려가자 복구과정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3) 아랫시장
    역전 아래쪽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1960년대 들어 광산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유입인구가 늘어나고 소비량이 증가하자 광산월급일에 맞춰 고한에 들르던 상인들이 하나 둘 씩 정착하면서 소매상으로 시장이 자리 잡았다.
  • 고한11리
    (1) 막골
    고한읍사무소 동남쪽으로 고한 역 뒤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산자락인 이 곳에 처음 정착했던 사람들이 막을 치고 살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2) 푯대봉
    막골 뒷산으로 해발 1,083.6미터의 산이다.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우리의 농토를 수탈하기 위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측량하기 위하여 산봉우리에 삼각 기점을 잡고 푯대를 박은 곳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3) 큰골
    막골에서 서쪽으로 푯대봉을 향해 난 골짜기다. 골짜기가 넓고 커서 ‘큰골’이라고 한다.

    (4) 작은골
    막골에서 푯대봉을 오르는 골짜기로 골짜기 안에 약수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5) 약수암
    막골 옆에 있는 작은골로 올라가 산꼭대기 부근에 있는 암자다. 암자 옆에 바위 틈 에서 약수가 솟아난다고 해서 암자 이름을 ‘약수암’이라고 한다.

    (6) 백운산
    고한읍사무소 남쪽에 있는 해발 1,426.2미터의 산이다. 영월군 상동읍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흰 구름을 연상하듯 능선에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백운산'이라고 한다.
  • 고한12리
    (1)하갈래
    고한읍사무소 일대를 중심으로 고한초등학교부근에서부터 고토일 일대를 말한다.

    (2) 하당목
    고한읍사무소 동쪽 산자락에 있던 마을을 크게 ‘당목’마을이라 하고, 위쪽에서부터 상중하로 나눌 때 아래쪽에 해당하는 당목이라고 해서 ‘하당목’이라고 한다.
  • 고한13리
    (1) 범소(範小)마을
    1972년 8월 이전에는 논(沓)이었으나 9월 장마로 수몰되어 버려 북부사택에서 몇몇 세대가 이동하여 촌락을 형성하였다. 소수세대지만 평소 근면하고 모범적인 마을이라 하여 '범소'로 불렀으며 그 이후로는 동원탄좌에서 많은 주택을 건축함으로서 '범소주택'으로 개칭되었다.

    (2) 북부사택(北部舍宅)
    삼척탄좌 독신자아파트 아래에 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 사택이다. 1967년 9월 10일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백운항을 철수하고 경일탄광 하청 842갱을 개발하면서 종업원 사택이 갱 북쪽에 위치했다하여 북부사택이라고 한다.

    (3) 경일사택
    1956년 6월 17일 경일탄광이 개광하면서 북부사택 북쪽 산자락에 형성된 사택이다.

    (4) 물한리(勿汗里)
    고한읍사무소 남쪽 백운산 아래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다.

    (5) 막장
    작은물한이골 안쪽으로 들어가면 막힌 곳이 나온다고 해서 막장이라고 한다.

    (6) 허궁나들이
    북부사택 앞 지장천에 있던 다리다. 옛날 하천 가운데에 불쑥 속은 큰 바위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건너다니게 했는데, 마치 허공 위를 걸어가는 것 같다고 해서 다리 이름을 ‘허궁나들이’로 불렀다고 한다.

    (7) 부처소(佛淵)
    고토일과 고한, 사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개울가에 있던 소(沼)다.

    (8) 불암소(佛岩沼)
    ‘부처소’의 다른 이름이다. 큰 바위 아래에 소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9) 불암소약수(佛岩沼藥水)
    부처소 옆에서 솟았다는 약수다.

    (10) 큰물한이골
    물한이골에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다.

    (11) 작은물한이골
    물한이골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작은 물한이골에 이른다.
  • 고한14리
    (1) 고토일(古土日)
    고려 중기 이주한 유랑민들이 찾아들어와 마을이 생겨났다고 해서 고토일이라고 한다. ‘일’은 ‘마을’을 뜻하는 말로, 이 마을은 윗마을, 못가마 아랫마을, 골말로 되어있다.

    (2) 웃마을
    고토일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골짜기 위쪽에 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3) 골마을
    윗마을 아래쪽 성황당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4) 참배나무골
    골마을 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골 안에 참배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골짜기를 올라가면 고개를 넘어가면 사북 범바위에 이른다.

    (5) 큰고톨
    윗마을 일대에 큰 마을을 이루고 있어 큰고톨이라고 한다.

    (6) 작은고톨
    고토일 입구 근처의 마을을 작은 고톨이라고 한다.

    (7) 승개이재
    작은고톨에서 사북 범바위로 넘어가는 고개다. ‘신재이재’라고도 한다.

    (8) 신재이재
    승개이재의 다른 이름이다.

    (9) 건암산
    고토일 남쪽에 있는 산으로 ‘우암산’이라고도 한다. 소가 서있는 형상의 큰 바위가 있어 우암산(牛巖山)이라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건암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국립지리원 발행 행정지도에도 건암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0) 조연(槽淵)
    우암산 근처에 있던 연못이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 나오는 지명으로 우암산이 소의 형국으로 구유의 역할을 했던 연못으로 추정할 수 있다.

    (11) 작도암(斫刀巖)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 나오는 지명으로 우암산에 있었다는 바위다. 절벽이 깎아 세운 듯한 반석 하나가 산 중턱에 있는데, 마치 혹이 붙은 듯하고 그 위에 작두 모양의 바위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12) 마당목이
    윗마을에서 정선군 동면 백전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다. 골짜기의 지세가 말의 목같이 골이 깊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백전으로 넘어서면 너른 골짜기에 이르는 길목이라고 해서 ‘마당목이’, ‘마당목’이라고 한다.

    (13) 장항(場項)
    마당목이를 한자로 쓴 이름이다.

    (14) 늪소
    마당목이 정상에 올라가기 전에 있었다던 소(沼)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농부 한 사람이 늪가에 소 한 마리를 매어놓고 마을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소는 온데 간데 없고 고삐만 물 속에 떠 있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늪소’라고 불렀다 한다.

    (15) 마당목재
    웃마을에서 백전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16) 뾰족봉
    윗마을 동쪽에 있는 해발 1,182미터의 봉우리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나라 토지 수탈을 위해 대대적인 측량을 하기 위해서 산꼭대기에 푯대를 박았다고 해서 '푯대봉'이라고도 부른다.

    (17) 뒷재
    윗마을 북쪽에 있는 고개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뒷재’라고 부르며,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어 사북 두일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18) 지름터
    골마을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19) 목지넘이
    지름터 옆에 있는 고갯길이다. 이 고개만 넘으면 바로 갈래로 넘어가는 목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20) 음달모태이
    고토일 아랫 성황당 부근에서 갈래재로 넘어가는 곳이다. 햇볕이 들지 않아 그늘진 곳이어서 ‘음달모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모태이’는 ‘좁은 범위의 한 부분’을 뜻하는 ‘모퉁이’의 사투리다.

    (21) 갈래재
    골마을에서 고한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22) 소두문동재
    골말 남쪽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으면 소두문동에 이르게 된다.

    (23) 못가마
    갈래재 아래에 있었다는 늪이다. 연못이 가마형국으로 너무나 생긴 이름으로 가마솥 전설을 낳은 곳이다.

    (24) 아랫말
    골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25) 두일재
    웃마을에서 뒷재를 넘어 사북 두일로 넘어가는 고개다.

    (26) 반야사
    고한읍사무소 남서쪽 백운산 아래에 있는 절로 불교 용어인 ‘반야’를 차용한 이름이다.
  • 고한15리
    (1) 진밭골
    고한읍사무소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광산 개발 이전에 다른 마을보다 밭이 모두 특이하게 길어 진밭골이라 불렀다한다.

    (2) 화약고골짜기
    진밭골 앞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골짜기다. 골짜기안쪽에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갱도 굴진용 다이너마이트 등의 화약류를 저장해놓았던 화약고가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3) 못골
    정암사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옛 책 등에는 ‘지곡(池谷)’으로 나온다. 지금은 다 메워지고 없지만 옛날에는 큰 못이 있었다고 해서 ‘못골’이라고 한다.

    (4) 지곡(池谷)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도 등장하는 지명으로, 못골을 한자로 쓴 이름이다.

    (5) 정암(淨巖)터널
    태백선의 고한역과 추전역 사이에 자리 잡은 한국 최장의 터널로 1973년 2월28일 개통되었다. 길이 4,505 m. 너비 3.9 m. 높이 5.9 m.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古汗里)와 태백시 화전동(禾田洞) 경계에 있는 함백산(咸白山:1,573 m)의 북사면에 있다.

    (6) 삼갈반지(三葛盤地)
    정암사(淨岩寺) 경대를 삼반지라고 하는데 이는 자장법사가 사북리 부처소(佛沼) 위의 산정에 탑을 쌓아 올리는데 탑 쌓는 도중 밤사이에 무너지고 다시 쌓아도 또 무너지기만 하므로 정성껏 기도하였더니 하룻밤 사이에 이곳에서 칡 줄기가 뻗어 현정암사 본장과 적멸궁(寂滅宮) 수마노탑(水瑪瑙搭) 자리에 세 갈래가 뻗쳐 있으니 이 셋 터전을 잡았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7) 갈래절
    정암사를 옛날에는 ‘갈래절’이라고 불렀다.

    (8) 못골절
    60년 전까지 정암사를 못골절이라고 불렀다. 20여년 전만해도 고한 토박이들은 현재의 ‘정암사’를 ‘못골절’ 또는 ‘갈래절’로 불렀다고 한다.

    (9) 정암사(淨岩寺)
    정암사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다. 숲과 골짜기가 해를 가리고 진세(塵世)와 동떨어져 정결하고 깨끗해 정암(淨巖)이라고 했다 한다.

    (10) 적멸보궁(寂滅寶宮)
    정암사 안에 있는 법당으로 자장법사가 견성(見星:득도)한 곳이라고 한다. 이 법당에는 신라 선덕여왕이 하사(下賜)한 금란가사(金襴袈裟)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오동향로와 자장법사의 법복(法服)과 많은 서적이 보정되어 있다.

    (11) 자장법사유골함(慈獎法師遺骨函)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는 중함박(中函朴) 아래의 조전암(祖殿庵)과 은대봉(銀臺峯) 사이에 석굴(石窟)에 자장율사의 화장한 뼈가 보관되었다고 한다.

    (12) 선장단(褼杖檀)
    적멸보궁 앞의 석단에 자라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주목이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거목이 되었다고 한다.

    (13) 적조암(漃照庵)
    정암사 뒷산 해발 1,000m에 있는 암자로 자장율사가 열반한 장소라 하여 적조암이라 한다.

    (14) 수마노탑(水瑪瑙塔)
    고한읍 고한리 정암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 적멸궁 뒤쪽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 있는 보물 제410호 지정된 7층 석탑으로 높이가 9m에 이른다. 칠층모전석탑으로, 탑 전체가 길이 30∼40cm, 두께 5∼7cm 크기의 회색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아져있다.

    (15) 정암사 중수비(淨岩寺 重修碑)
    고한읍 고한리 정암사 경내에 있는 비석으로 비문 내용은 정암사 수마노탑의 중수기를 기록하였다. 현재 정암사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6) 귀암(龜巖)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 나와 있는 지명으로 정암사 옆 시냇가에 있었다는 바위다. 바위 형상이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17) 부금소
    진밭골 서쪽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전설에는 땅이 많은 부씨, 김씨, 소씨가 마을을 개발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18) 신적
    부금소 남쪽에 있는 해발 1453.4미터의 산이다. 이 산에 올라 살개매기를 거쳐 상동으로 갈 수 있었다.

    (19) 살개매기
    신적에서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박심쪽에서 올라오는 골짜기와 맞닿는 곳이다. 일설에는 지형이 디딜방아의 살개처럼 생겨서 ‘살개매기’라고 한다고 하지만, 커다란 능골 사이에 위치해 나온 지명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살’은 ‘사이’를 뜻하는 지명형태소로 고구려 지명인 사열이(沙熱伊)에서 나온 말이다.

    (20) 삼봉골
    부금소에서 남서쪽으로 난 골짜기다. 예전에 이 골짜기를 넘어 상동의 단양촌으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21) 싸리덕
    부금소 동쪽 진밭골 위로 있는 평지다. 석회암이 빗물에 용식되어 침식되면서 지표에 웅덩이 모양의 와지(窪地)가 형성되는 돌리네(doline) 현상으로 생겨난 언덕 위의 땅을 ‘덕’이라고 한다.

    (22) 장군바위
    싸리덕 위에 있는 바위다. 싸리덕 위로 우뚝 솟은 바위가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23) 산막골
    홍태골 위쪽에서 천의봉과 함백산 중간지점으로 갈라진 골짜기다. 옛날 골짜기 안에 갈나무껍질로 막을 치고 기거하며 약초채취를 하던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24) 홍태골
    정암사에서 만항으로 올라가다가 왼쪽인 동쪽 천의봉으로 난 골짜기다.
  • 고한16리
    (1) 신사택
    강원랜드 독신자아파트 주차장 위에 있던 사택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사택이 생기면서 위쪽에 있는 구사택이라는 뜻으로 ‘상구사택’ 또는 ‘신사택’이라고 불렀다.
  • 고한17리
    (1) 양지마을
    고한읍사무소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 높은 땅에 위치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의 마을이라고 해서 양지마을이라 부른다.

    (2) 등마을
    신사택 위이 기차굴다리 옆의 동네다. 일설에는 한번 올라갔던 사람은 또 다시 올라가기는 싫은 곳이라 하여 등마을 이라 불렀다고 하나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 고한18리
    (1) 지서골목
    고한파출소에서 우체국 쪽으로 난 골목이다.
  • 고한19리
    (1) 구사택
    현재 고한초등학교 위에 있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광부사택이다. 예전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사택이 있던 마을로 사택이 위쪽에 있어 상구사택이라고 한다.
담당부서 : 고한읍
연락처 : 033-560-2822
최종수정일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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