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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읍

사북읍

사북읍은 조선 시대에 동산면 관내로, 사음대, 북일, 고토일, 물한리, 발전, 수출 등 7개 리였다. 그러다가 광무 10년(1906년)에 동상면과 동중면을 합해 동면 관내로 바뀌었고,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86년 7월 사북읍으로 되었다.

  • 사북리(舍北里)
    현재 사북읍 소재인 사북 7리 12, 3, 8리 지역인데 조선시대 때 방좌수(方座首)라는 부자가 있어 이곳에 그의 땅을 관리 경작하면서 마을 산턱에 소작권도 주며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옛 마을 지명인데 사음(舍音)이란 사자와 북일(北日)의 북자를 합쳐서 사북이라고 칭한 지명이다. 속칭 사복(蛇伏)이라고도 한다. 또한 북쪽에 정암사가 있다 하여 사북(舍北)이라 하였다 한다.

    (1) 노른가리 : 사북 1리 지역에 해당하며 옛날 지명인데 이 마을에 노른가리 속칭 황가리(黃家里) 부자 마을인데 곡식을 말(斗)로 나누어주는 후한 인심과 많은 곡식을 여러 날 말로 되어야 한다는 뜻에 기인 되 생긴 지명이다. 일명 노음곡(老陰谷)이라고 한다.

    (2) 사음대(舍音垈) : 조선시대에 방좌수라는 부자가 있어 토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사음(舍音)을 두었다. 사음을 일명「마름터」라고 부른다. 마름이란 지주의 땅을 대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명 사음대(思蔭垈)라고도 한다.

    (3) 사음(寫音) : 사음은 사음대와 노음곡의 글자를 따서 사음이라고 생긴 말이다.

    (4) 북일(北日) : 북일은 일명 두일(斗日)로 두일은 북쪽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5) 범바위 : 사북중, 고등학교 뒷편에 거대한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흡사 범과 같아서 범바위라고 부른다.  옛날에 이 바위 밑 굴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 길렀다해서 이 고을을 범바위골이라고 생긴 지명이다.

    (6) 말개이골 : 사북 12리 지역으로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유리 거울 같이 맑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속칭 말이 여물 먹다가 남겨놓고 왔다하여 밥 남은 소(沼)라 했는데 지금 사북시장 뒤편이다.

    (7) 화절령(花折嶺) : 사북 6리에서 영월군 상동면으로 통하는 험준령치인데 진달래, 철쭉꽃 등이 만발해 오가는 길손을 즐겁게 하는 봄철의 경치가 장관이래서 붙여진 지명이고 사북 8경의 명승지이다. 이곳 정상에는 100평정도의 큰 연못이 2개소 있다.

    (8) 지장산(地藏山) : 지장산은 동원탄좌 동원광업소 뒷산으로 지장산은 글자 그대로 땅에 지하자원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다고 붙인 지명이다.

    (9) 골 말 : 지장산(표고 931m)과 노목산(표고 1,150m) 산의 사북 10, 11리 지역으로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이란 지형에서 유래되었다.

    (10) 도사곡(道士谷) : 사북 4리인데 항일전적이고, 동학란 때 평양에서 선비 50여 호가 정감록을 보고 이곳에 피난을 와 생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항일전적지로도 유명하다. 두위봉 동쪽 계곡에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예속 부대 의병단 백 여명이 퇴소한 대오를 다시 정돈하며 재거의 준비를 진행 중 일본군의 불의의 습격을 당하여 악전 고투하였으나 왜병의 신무기에 당할 길 없어 의병 80여명이 천추의 한을 품고 장열한 최후를 마친 격전지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86. 8. 15일 도사곡 입구에 사북라이온스클럽에서 김시중(金時中) 의 병장의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도사곡전투에 김시중 의병장 동생 김시백(金時伯) 의병도 함께 참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김시중 장군이 전사하자 형의 시신을 거둘 수 없어 현지에 가매장하였다가 후일 동생 김시백이 형님의 시체를 영월군 하동면 내래앞골 뒷산에 산소를 모셨다고 하나 현재 그 묘소는 찾을 길이 없다.  이곳은 서출동유북향수(西出東流北向水)하여 도사가 탄생할 수 있는 지역이라 하여 도사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직전리(稷田里)
    본리는 조선조시대 동상면에 속하던 무낼(水出) 피내, 사부랭이(沙浮浪)골 배랑터, 삼부자(三富者)골, 옥실(玉室), 먼지골, 이스내, 잿말랑 등 마을인데, 피내 또는 발전(鉢田)의 뜻인(피작물) 피직자와 발전(鉢田) 밭전(田)자를 따서 지은 지명으로 추측된다. 속칭 승여(僧侶)의 바랏대 그릇을 놓았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250년 전 화전민촌으로 형성된 고산마을로 옛부터 난을 피해서 은둔생활을 하여오던 금성 나씨(羅氏), 제주 고씨(高氏), 밀양 박씨(朴氏)가 정착하였다.

    (1) 피내 : 직전리 2반에 위치한 지역으로 현재 직전분교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지명을 세분하면 피내골, 옥실골, 이슬래골, 제작재가 있다. 약 200년 전 쌓은 돌탑이 있는데 높이 4m, 둘레 10m 돌무덤 안에는 백말을 묻고 쌓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출연하여 마을에 재앙을 일으키니 이를 막기 위해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2) 무낼 : 무낼은 불당곡(佛堂谷), 사양곡(賜陽谷), 회곡(回谷), 천지곡(天地谷) 등을 합하여 무낼 또는 수출(水出)등이라 하였다. 불당곡은 옛날에 절이 있는 곳이다. 사양곡은 음지가 아닌 양지로서 햇볕이 잘 쬐는 골이고, 천지곡은 다른 곡 보다 비교적 높아 천지골이라 한다. 무낼은 말 그대로 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무내라 유래된 지명이다.

    (3) 발전(鉢田) : 직전 3,4반을 통틀어 발전이라 부른다. 이 지역 사부랑곡(沙浮浪谷)에는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로서 고랭지 채소가 잘되는 곳이고 옛날에는 갈대 숲이 무성한 평원지라고 해서 바리대 밭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다.

담당부서 : 사북읍
연락처 : 033-560-2625
최종수정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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